
짱구의 이 극장판, 혹시 보신 적 있나요?
기억 안나시는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떡잎마을방범대 5인방이 술래잡기를 하며 놀다가, 어쩌다 들어간 인적 드문 골목에서 낡은 극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 없는 극장에서 이상한 영화를 보다가 짱구를 제외한 친구들이 사라진다. 짱구는 가족들과 함께 극장에서 친구들을 찾다가 영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 속 세상은 서부시대 마을 배경,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 세계이다. 마을은 저스티스 시장이라는 사람의 독재체제로 운영되며, 사람들의 노동이 강제로 착취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이다. 마을에서 짱구는 친구들을 재회하지만 친구들은 이미 진짜 세상을 잊고 영화 속 세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전부 그 극장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 영화 속 세상에 오래 있다보면 점점 진짜 세상을 잊고 영화 속 세상에 적응해간다. 짱구 가족은 어떻게 이 세계를 탈출할까 고민 끝에, 결국 영화를 완성시키면 진짜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 결과 멈춘 태양이 움직였고, 발명가 할아버지의 발명품을 통해 힘을 얻은 떡잎마을 방범대는 시장을 무찌르고, 결국 마을 사람들은 봉인된 진실을 풀어 원래 세계로 돌아온다.
혹시 이 선아라는 캐릭터 기억하시나요?

이 캐릭터는 원래 저스티스 시장을 돕는 역할인데, 배신하고 짱구를 돕죠.
그런데 사실, 선아는 단순히 짱구에 도움이 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짱구가 이 영화 속 세상의 진실을 깨닫고 탈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 있는 인물입니다.
먼저 어떻게 짱구가 탈출 방법을 깨달았는지 봅시다.


짱구와 맹구는 멈춘 태양을 보며 얘기합니다.
짱구: 해님이 안 움직이네?
맹구: 그러게
짱구: 여기 영화 속 세계지?
맹구: 그러게
짱구: 원래 영화는 움직이잖아 그런데 해님은 왜 안 움직여?
맹구: 그러게 (뜸들인 후) 영화가 중간에 멈춰서 그래
짱구: 왜?
맹구: 글쎄 왤까?
짱구: 중간까지밖에 못 찍어서 그런가?
이 문답식 대화에서 짱구는 영화가 중간까지만 찍혔기 때문에 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다음 장면에서는 신형만과 마이크가 영화 속 세상에 대해 얘기하는데, 마이크가 신형만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영화가 자길 도와달라고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 같다며 신형만에게 말해보지만, 신형만은 영화가 자신들더러 뭘 도와달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시큰둥해합니다.

이때 짱구는 앞서 깨달은 내용을 두 사람에게 이야기합니다.

솔깃한 두 사람은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 모두가 함께 영화를 완성하고 영화 속 세상을 탈출합니다.
이 두 장면은 짱구 일행이 영화 속 세상을 탈출하기 시작하는 첫 스타트인데요. 이 두 장면 바로 직전에는, 그동안 오랜시간 영화 속 세계에 적응해 살아가는 짱구의 독백이 흘러나옵니다. 이 독백이 시나리오상의 분기점이 되는 것이죠.
(이하 독백)

아직 며칠 안된 줄 알았는데, 이 세계 온지 벌써 이렇게 많이 지났다.

엄마는 그 일이 있은 이후, 그냥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빠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채찍이 무서우니까.

훈이랑 유리는, 유리는 잘 모르지만, 훈이는 제법 즐거운 것 같다.

철수는 아직도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버럭 화를 낸다. 하지만 아무리 시치미 떼도 역시 내가 아는 철수가 맞다.


나랑 맹구는 아무것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가끔 깜빡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부리부리대왕 그리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 정말 놀랐다. 지금도 그리지 못한다.


이 영화 속 세계에는, 원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랑 떡잎마을 사람들이 섞여있는 것 같다.


난 어느 쪽 사람이었더라?


가끔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떡잎마을도 집에서 날 기다리는 흰둥이도 전부 잊어버릴 것 같다.


어어...

정신차리자...
짱구가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 알아차리셨나요?

바로 선아가 짱구에게 사과를 줬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왜 굳이 인물을 담은 전체 컷씬 이전에 사과를 강조한 씬을 삽입했을까요?
영상으로 보시면 이해가 더 빠를 겁니다.

https://www.google.com/amp/www.christiantoday.us/sub_read_amp.html%3fuid=16294
≪크리스찬투데이≫ (6) 선악과 묘사된 '사과'
“여자가그나무를본즉먹음직도하고보암직도하고지혜롭게할만큼탐스럽기도한나무인지라…”<창세기3:6>사과나무©크리스찬투데이옛부터많은
www.christiantoday.us
예로부터 창세기 속 선악과는 사과로 많이 묘사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은 선악과가 명확히 어떤 과일인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사과를 선악과의 상징으로 쓸 수 있는 개연성 정도는 충분하겠죠.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경고하셨지만, 먼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어버린 하와라는 여인이 남편 아담에게 같이 먹자며 유혹했고, 결국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후 그 둘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됐다고 합니다.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입니다. 정통 기독교에서 선악과 섭취는 성경 묘사대로 당연히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지주의 등 일각에서는 왜 사람이 선과 악을 알면 안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지주의란, 본래 영적 세계의 존재인 인간이 죄를 지어 사악한 신이 관리하는 물질세계에 갇히게 되었고, 따라서 이 물질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영적 지식을 깨우쳐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기독교 종파로서의 영지주의는 선악과를 먹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악한 물질세계를 탈출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영화의 줄거리 및 주제의식과도 연결될 수 있겠죠? 저스티스 시장이라는 악한 지배자가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짱구 일행이 가짜 세상을 탈출하는 게 이 영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매트릭스 시리즈로 해석해본다면, 짱구는 네오 역할이고 짱구가 받은 사과는 빨간 약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트루먼쇼와 겹치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짱구 극장판 중에서도 서부시대 편은 상당히 재밌으니 다시 보셔도 재밌을 거예요.